박창후> 미국 농인 갈로뎃 대학교(Gallaudet University)는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한 농인 대학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대외적으로는 꽤 그럴 듯한 대접을 받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대내적으로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는지요? 예컨대 삼류 취급을 받거나 그런 사회적 분위기라도 좀 있는 건지요? 갈로뎃 대학교 출신으로 미국 주류 사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케이스가 얼마나 되시는 지요?
강주해 목사님> 갈로뎃 대학교는 세계에서 유일한 농인을 위한 인문계 대학입니다. 물론 시설이나 교수의 질, 그리고 연구 논문 실적 등을 종합할 때 청인 대학교보다는 다소 떨어집니다. 시사 잡지에 해마다 미국내 대학교의 랭킹이 나오는데 그것을 보면 갈로뎃은 100위권에도 들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공부하는 학생들이 80%가 농인이기 때문에(20% 청인 학생들은 대학원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에만 등록이 허용됩니다) 아무래도 청인 학생들이 갖지 않는 핸디캡(청력 상실로 인해 언어습득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는)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싫어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만만치 않은 댓가를 치러야 하는 핸디캡을 고려할 때 농학생이 청인 학생보다 뛰어난 실력을 과시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갈로뎃 대학교가 미국의 소위 아이비리그 대학들(하바드, 예일, 프린스톤, 등등)과 견줄 수 없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럼에도 농교육학이나 농학(Deaf Studies) 그리고 미국수어학(American Sign Language) 등등 농 관련 학문에 있어서는 갈로뎃 대학이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세계 어느 나라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합니다. 유럽 농 관련 학자들도 갈로뎃 대학이 갖고 있는 방대한 농 관련 장서와 자료들 때문에 연구를 위해 많이 찾아옵니다.
갈로뎃 대학 출신 농인들 중에 사회적으로 성공한 이들이 다수 있습니다. 특히 농인 박사들 중에 갈로뎃 출신이 아주 많습니다. 그리고 농학교 농인 교사들도 갈로뎃 대학 출신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갈로뎃 대학 출신으로 카나다 국회의원을 한 농인이 있는데 지역구에서 주민들에 의해 선출된 의원이 아니라 비례대표제로 선출된 의원이라는 사실이 옥의 티라고 볼 수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국회의원인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갈로뎃 대학 출신으로 대학교 총장이 된 킹 죠던 박사가 있습니다. 그는 갈로뎃 대학 사상 최초의 농인 총장으로 기록된 사람입니다. 갈로뎃 대학을 비롯하여 많은 대학에서 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는 갈로뎃 대학 출신 농인 동문들이 많이 있고요. 갈로뎃 출신으로 농학교 교장이 된 이들이 많이 있는 것도 갈로뎃 대학의 저력이라 할 만합니다.
제가 깊은 인상을 받은 것은 갈로뎃 출신으로 미국 정부 기관에서 활약하는 농인들이 다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아는 후배가 중앙정보부(CIA)에 근무하고 있는데 연봉 10만불 이상 받습니다. 그리고 재미동포로 갈로뎃 대학을 나온 젊은 여성이 FBI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름이 아마 제인 리인 것 같은데 FBI는 연방수사국으로 영화에 많이 나오는 권위 있는 범죄 수사기관으로 꼽히는데 거기서 농인이 근무하고 있다는 것이 경탄스럽습니다. 물론 그 농인이 직접 수사를 지휘하는 것은 아니고 수사 관련 정보를 취급하는 일을 하는 사무직입니다만 수많은 청인 직원들 사이에 끼여 함께 일하고 있다는 것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뿐 아니라 전공에 따라 생물학 연구원, 회계사, 변호사, 화학연구원 등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농인들의 주류 사회의 성공적 진출에 관한 한 한국과는 하늘과 땅 만큼 엄청난 격차가 나는 선진국다운 면모를 보이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박창후>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인데요. 서울농학교가 청와대 근처(5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전현직 대통령들로부터 한번도 공식적인 방문을 받지 못했습니다. 고작 선거를 위해 서울농학교 강당에 투표를 하고 나온 게 전현직 대통령들의 꼴사나운 풍경이었습니다. 그들은 농학생들하고 어울리거나 그런 건 한번도 전혀 안했습니다. 수화를 바라보는 대한민국 최고 지도자들의 의식 수준을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이었습니다. 전현직 대통령들은 왜 농학교 공식적 방문을 기피하는지 그건 곧 한국사회의 정신질환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수십년 전, 신앙심이 깊으신 어떤 아버지의 자서전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방안에서 기도한 아들의 이상한 목소리라고 정확히 쓰지 않고, 농아자의 이상한 목소리라는 단어로 둔갑시키면서까지 애매모호한 표현기법을 구사한 부분에 이르러서는 씁쓸한 적이 있었습니다. 자기 아들을 부끄러워서 이러한 표현기법을 구사한 거라고 그때 판단했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일수록 장애에 대해 매우 위선적이거나 이중적이라는 데에 대체적으로 동의하시는 편이신가요?
강주해 목사님> 개인적으로 대통령들을 만나서 그들의 장애인관에 대해서 살펴보지 못한 가운데 뭐라고 논평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대통령들이 농인들에 대해서 기피증이 있다기 보다는 농인들에 대한 인식이 아주 낮아서 농인들에 대한 관심을 별로 가지지 못한 데서 연유한 문제라고 분석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얼마 전 이명박 대통령이 포천에 있는 농인 가구공장에 방문하여 농인 기능공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고충이나 민원을 직접 청취하는 시간을 가진 것으로 TV에서 보도되었습니다. 교육부에서 대통령에게 농학교 방문을 주선해주면 농학교 방문이 성사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과연 대통령이 빡빡한 일정을 쪼개서 농학교를 방문할 정도로 농교육에 대한 관심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초등부 1학년이었을 때 윤보선 대통령이 농학교에 직접 찾아오셔서 시찰을 하신 적이 있었는데 제가 몇몇 초등부 아이들과 함께 윤 대통령 발치에 앉아서 함께 찍은 사진이 있어요. 그 다음에는 육영수 여사의 방문이 있었고 그 후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에서 투표하기 위해 농학교를 찾은 것 외에는 시찰을 목적으로 한 방문이 한 건도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서울농학교는 국립농학교입니다. 국립이기 때문에 졸업식 때 대통령이 직접 나와서 축사해주면 좋겠지만 대통령의 빡빡한 일정을 고려할 때 희망사항으로 치부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대신 졸업장에 대통령의 서명을 함께 넣었으면 좋겠습니다. 갈로뎃 대학의 경우 대통령을 최고 후견인으로 한다는 규정이 아브라함 링컨 때부터 확립되어 졸업장에 대통령의 서명을 반드시 넣도록 되어 있습니다. 갈로뎃 대학은 아이비리그 대학들보다 질적으로 우수하지 못하지만 대통령의 사인이 들어있는 졸업장 덕분에 마치 권위 있는 대학이라는 심리적 효과를 유발시켜 주기에 충분합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불교와 유교의 영향권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업보와 인과응보를 주요 교리로 가르치는 불교와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지 않는 유교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시각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120년전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되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 변화에 많은 진전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증거는 역사를 고찰하면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가 불교와 유교의 영향력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장애인에 대해서 편견적인 부당한 태도가 일반인 의식에서 완전히 청산되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상류층 인사들 가운데 출세에 지장이 될까 하는 우려 때문에 그리고 장애인 자녀를 두었다는 사실에서 비롯된 수치감 때문에 농자녀를 애써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이해될 여지가 있는 일입니다. 건전한 장애인관이 확립되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절대로 불식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자폐아를 아들로 둔 법무장관이 자기 자식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당당히 언론에 밝히고 장애인 부모들에게 장애인 자녀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그 법무장관의 아내가 미국 장애인 인권과 복지를 위해 정력적으로 뛰어다니시는 것을 제가 직접 만나 두 눈으로 확인한 바 있었습니다. 참고로 1990년인가 1991년에 발효된 미국장애인법이 부시 대통령에 의해 서명되었을 때 그 법무장관이 옆에서 지켜보았을 정도로 장애인 아들에 대한 그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이 지대한 바가 있었습니다. 장애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기독교의 가르침이 건전한 장애인관 형성과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남겼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기독교의 건전한 장애인관에 자극받아 타 종교들도 장애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에 힘을 쏟기 시작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한 두 세대 후면 장애인 자녀를 수치스럽게 여기고 숨기는 일이 사라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하고 싶습니다.
박창후>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에서 갈로뎃 대학교가 있습니다. 최초로 보이는 아시아인으로서 목사님께서 이 대학교 교목을 수년간 맡으셨는데 갈로뎃 대학교가 전현직 대통령들의 공식적인 방문이 있었습니까? 미국 사회가 갈로뎃 농인 대학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현지에 정통하시니까 한말씀 좀 해주십시오. 한국사회로 치면 웬만한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급은 아니더라도 서울에 소재해 있는 대학교 수준이신가요? 아니면 지방대 수준이신가요? 즉 갈로뎃 대학교의 네임밸류는 미국사회에서 어떤 수준으로 통하고 또한 학문적으로 어떤 수준에 놓여 있는지 궁금합니다.
강주해 목사님> 제가 갈로뎃 대학에 오래 몸담아보지 못해서 전 현직 대통령의 공식 방문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갈로뎃 대학의 최고 후견인(patron)이 미합중국의 대통령입니다. 일찍이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갈로뎃 대학이 사립대학임에도 농학생들이 공부하는 대학이라는 특수성을 인정해서 국가 예산 지원을 합법화할 수 있는 장치로 자신을 최고 후견인으로 한다는 대통령령에 서명함으로 갈로뎃 대학이 지금까지 계속 미국 대통령을 최고 후견인으로 모시는 행운을 누려왔습니다. 다른 사립대학에서 그런 특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참으로 파격적인 조치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졸업장을 보면 반드시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있습니다. 제가 1991년에 받은 갈로뎃 대학원 농교육학 석사 학위를 보면 당시 대통령이었던 죠지 부시(아버지)의 서명이 있습니다. 장진석 교수의 경우 2005년인가 2006년에 졸업했으니 아들 죠지 워커 부시 대통령의 사인이 그 학위에 들어있을 것입니다.
갈로뎃 대학 이사회를 보면 이사 중에 상원의원과 하원의원이 각각 한 사람씩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정도면 갈로뎃 대학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되겠지요. 미국은 세계에서 유일한 농인을 위한 대학을 가진 나라입니다. 일본에 쯔꾸바 공과대학 안에 농학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습니다만 청인 대학의 부속학교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에 반해 갈로뎃 대학은 농인을 위한 대학답게 학부 학생들을 전부 농인으로 구성되고 있습니다. (석사 박사 과정의 경우 청인 학생의 입학을 허용한다는 예외가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갈로뎃 대학의 지명도는 생각보다 높은 편입니다.
전에 제가 미국 유학 가기 전 서울에 있는 미국 영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할 때 미국 영사에게 갈로뎃 대학에 가고 싶으니 비자를 허락해달라고 하니 그 영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쉽게 허락해주더랍니다. 그 때는 1977년이었어요. 그만큼 갈로뎃 대학은 영사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지요.
특히 1988년 3월에 와싱턴 디시를 뒤흔들었을 뿐 아니라 미국 전체를 흔들었던 저 유명한 Deaf President Now!(이제 농인 총장이 나올 때가 됐다!) 시위운동 덕분에 갈로뎃 대학이 미국의 매스컴에 타게 되었고 그 시위운동이 성공하면서 마침내 학생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농인 총장이 탄생하자 더 더욱 신문이나 방송에 널리 보도됨으로 갈로뎃 대학은 일약 유명한 대학으로 많은 미국인들에게 각인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 행운을 낚았습니다.
농학생들의 실력은 아이비리그 대학생들에 견줄 형편이 되지 못합니다. 이것이 농인이 안아야 할 핸디캡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마치 권투나 유도나 역도 같은 격투 경기에서 헤비급 선수가 라이트급 선수와 대결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극히 드문 경우지만 농인의 몸으로 아이비리그 계통 대학에 가서 공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만 말 그대로 극히 드문 경우에 속합니다.
농학생들의 실력을 감안해서 저는 갈로뎃 대학의 수준이 지방대학의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농사회의 입장에서 갈로뎃 대학은 뭐니 뭐니 해도 농학생들을 위한 엘리트 명문 대학이라고 평가하는 경향이 상존합니다. 이러한 네임 밸류가 농학생들의 취업에 호재로 작용하고 있는 듯합니다.
미국은 칭찬에 아주 후합니다. 실력 면으로 볼 때 아이비리그 명문대에 견줄 형편이 못되어도 농인의 몸으로 대학에 나왔다는 사실에 후한 점수를 주는데 인색치 않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무조건 1등이 아니면 칭찬해주지 않습니다. 금메달을 딴 선수는 환호하며 우러러 보지만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딴 선수는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차이를 감안할 때 미국 어느 누구도 갈로뎃 대학이 실력 면에서 지방대 수준이라고 해서 무시하거나 낮게 평가하는 일이 없습니다.
박창후> 갈로뎃 대학교를 나온 한국 농인들은 한국에 와서 활약한 사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여기서 갈로뎃 대학교 유학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대개 미국에 안착하거나 아예 영주권을 얻어서 미국인이 되어 버린 사례가 수두룩합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사회가 아직도 그들을 받아들일 만한 때가 아니라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들은 어렵게 가서 정말 어렵게 공부했는데 공부한 보람이 느껴지기는커녕 고국을 원망하거나 그리워하면서 타국에 여생을 마감하게 하는 이러한 비극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주해 목사님> 갈로뎃 대학에 진학한 최초의 한국인인 조경건 박사의 경우 졸업한 당시 한국의 상황이 열악했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 보았자 자신을 받아줄 곳이 막연하기 때문에 그냥 미국에 눌러 앉은 케이스입니다. 애국심이 부족하다고 마냥 그를 탓할 수 없습니다.
요즘 한국의 눈부신 경제력 신장 덕분에 장애인들의 취업 사정이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 농인들이 와서 자리를 잡기에는 여건이 아직 무르익지 못한 감이 있습니다. 이들이 영어를 제법 구사할 만큼 능력을 갖추었어도 과연 한국 어느 농학교에서 그들을 정식 교사로 받아줄 수 있을까요? 한국 농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려면 국가에서 시행하는 교사 자격 시험에 합격해야 합니다. 과연 이들이 그런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있을까요? 설사 자신이 있다 해도 외국에서 취득한 학위를 과연 국가에서 인정해줄 수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불가불 한국의 특수교육학 대학원에 들어가 2년 더 공부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누가 오겠습니까? 이렇게 국가에서 외국에서 공부한 농인 인재를 과감히 영입해주지 않는 한 이들이 귀국한다 해도 좋은 직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귀국의 절실한 필요성을 못느끼는 것입니다. 제가 목사로써 다행히 저를 받아주는 교회가 있었기 망정이지 만일 그런 교회가 한국에 없었더라면 한국에 못 올 뻔했을지 모릅니다.
또 한 가지, 미국에서 공부한 농학생들 중에 한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이 이들로 하여금 한국행을 주저하게 만든 약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어는 동사나 형용사의 어미변화가 심하고, 조사의 활용이 복잡하기 때문에 농인 입장에서 한국어를 배우기보다는 영어를 배우는 것이 더 쉽지 않겠나 하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현재 미국과 한국을 비교할 때 농인들의 취업 사정에 관한 한 미국이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미국에서 공부한 한국 농인들이 미국에 정착해 산다고 해도 비난할 입장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박창후> 갈로뎃 대학교를 나온 정훈 선배나 안정선 씨가 한국에 와서 갈로뎃 대학교 홍보에 적극적으로 나온 건 어쩌면 대학생활 즉 유학생활에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나머지, 졸업하고 나서의 진로에 대해 한번도 심각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는 치명적인 오류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정작 홍보해야 할 갈로뎃 대학교 관계자들은 한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고, 한국 농인 유학생들이 갈로뎃 대학교를 홍보하는 건 어떻게 보면 갈로뎃 대학교 관계자 대신 총을 매는 것 같아보여 꼴사납기도 합니다. 짧게 생각해보면 외화낭비이요, 넓게 생각하면 유학을 통해 세상 좀 넓게 보라는 좋은 뜻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갈로뎃 대학교 홍보는 한국사회의 벽을 허물어 뜨리기는 커녕 유학이라는 현실적 도피에의 악순환에 자꾸만 빠져들게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한국사회의 벽은 그대로 두고, 갈로뎃 대학교에 가서 공부하고 또 졸업하고 그러면서 미국 사회에 정착하는 게 정녕 한국 사회에 어떠한 실질적인 도움이라도 줄 수 있는지 저로서는 솔직히 판단이 잘 안 섭니다. 지금까지 갈로뎃 대학교를 나온 한국농인들은 거의 대부분 한국에 와서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대개 미국사회에 아주 정착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현실이었습니다. 내가 알기에는 갈로뎃 대학교를 나온 장진석 씨가 천안 나사렛 대학교 수화통역학과 전임교수로 활약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나머지는 미국에 거의 전부 있습니다. 갈로뎃 대학 유학은 또 다른 현실도피의 달콤한 이름이나 희망이 안 보이는 한국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주해 목사님> 갈로뎃 대학 졸업 후 취업률이 나쁘지 않기 때문에 저는 갈로뎃 대학 홍보에 대해서 그리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친구들 특히 아시아계 친구들 중에 취업에 실패한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말레이시아 친구는 텍사스의 작은 대학에서 수학과를 가르치고 있고 인도 친구는 캘리포니아주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고요. 싱가폴 친구는 역시 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아시아계 친구들도 졸업 후 미국에 정착해서 괜찮은 직업을 갖고 잘 살고 있습니다. 고국에 돌아가 활동하는 사람은 일본이 많고 다음이 홍콩입니다. 대만에서는 한 사람이 교사로 활동 중인데 이는 대만에서 미국에서 취득한 학위를 인정해주어서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전공에 따라서 귀국해서 일하는 게 유리한지 아니면 미국에 눌러 앉아 일하는 게 유리한지 다를 수가 있지요. 모국의 농인들의 취업 사정이 유리하다면 아마 많은 한국 농인들이 미국 유학 후 귀국해서 활동할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리고 많은 한국 농인들이 고백하는 사실인데 미국에서 1년 이상 살다 보면 한국보다 미국에 더 살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낄 정도로 미국의 생활수준과 생활환경 등등 많은 것이 한국보다 훨씬 매력적이라고 합니다. 특히 자녀 교육에 관한 한 한국보다 훨씬 유리하기 때문에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 이민을 원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로 자녀교육을 꼽았을 정도입니다.
만일 박사 학위를 취득한 농인이 있을 경우 호조건으로 그를 한국에 스카웃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래야 한국 농사회에 자산이 될 것입니다.
미국은 우수한 외국 인력을 영입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우수한 인력을 많이 확보해야 국익이 그만큼 증대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은 우수한 농인 인재 영입에 소극적입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농아인협회에서도 농인 인재를 영입할 재정적 능력이 구비되어 있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우수한 농인 인재를 활용할 능력도 여건도 성숙해 있지 않는 한국의 상황이 마냥 슬프고 가슴이 찢어질 듯한 단장의 아픔을 느끼게 합니다. 한국 농사회의 구석 구석을 살펴보면 의외로 뛰어난 실력을 가진 농인들이 자신의 능력에 맞는 중요한 역할을 맡지 못하고 그냥 평범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조용히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들 인재를 활용할 줄 모르는 한국 농사회의 무능에 얼마나 실망하고 슬펐는지 모릅니다. 이들을 보면 저는 마치 죄를 지은 느낌이 듭니다. 제가 무능해서 이들을 양지로 끌어올려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으로는 한국이 취업이라는 차원에서 장애인을 우대하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박창후> 장진석 교수님과 안영회 교수님께서 현재 천안 나사렛 대학교 수어통역학과를 가르치고 계시는데요. 두분 다 교수 신분으로 수어통역학을 가르치고 있는 반면, 이종민 씨가 유학생 신분으로 농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어서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저번 인터뷰에서 말씀해주셨는데요. 혹시 알고 계실 지도 모르겠지만, 세 분의 공통점은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굳이 세 분의 예를 들 것도 없이 한국 사회에서 어느 정도 좀 성공했다는 농인의 뚜렷한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바로 구화 잘 한다는 점입니다. 장진석 교수님께서 입모양은 매우 정확하고 발음도 매우 좋은 편에 속합니다. 특히 안영회 교수님께서 정확한 발음을 내고 계십니다. 이종민 씨도 말 꽤 잘하는데요. 목사님께서 90년대에 비해 점차 수화와 구화 둘 다 정확히 구사하시려는 변화가 눈에 크게 띄었습니다. 가장 자연스런 언어는 농식수화라는 걸 충분히 잘 알고 계시는 목사님께서 왜 굳이 구화를 익히셔서 수화와 구화 둘 다 구사하시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신지요? 93년 10월경 칼빈의 예정론을 강의하신 목사님의 동영상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수화를 구사하시는 동안 가끔 구화도 쓰셨는데, 16년이 흐른 올해 8월5일 CGNTV 방송에서 목사님께서 수화와 구화 둘 다 동시적으로 쓰시는 변화가 눈에 크게 띄었습니다. 목사님께서 한국 사회에서 말 잘한다는 농인을 우대하고 있는 고약한 풍토에 굴복하신 것으로 판단해도 되겠습니까?
강주해 목사님> 장진석 교수, 안영회 교수, 그리고 이종민 선생은 어릴 때 일반학교에서 청인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신 분들입니다. 장진석 교수는 원래 서울농학교에서 교육을 받다가 초등부 5학년인가 6학년 때 일반학교로 전학한 케이스라는 점에서 다른 두 분과 차이가 있습니다만. 이렇게 청인 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구화 구사 능력이 우수한 것은 하등 이상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어릴 때 형성된 습관이나 버릇이 성인이 된 후에도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오죽하면 속담에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습니까. 이들이 뒤늦게 농사회에 합류하여 성공적인 활동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환영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구화와 수화 병행 표현 방식을 문제 삼는 것 같은데 이들의 성장 배경을 고려할 때 충분히 이해해주어야 합니다. 신기한 것은 사람마다 개성이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얼굴이 비슷해보여도 지문이나 DNA를 보면 엄청난 차이를 보입니다. 그만큼 사람마다 개성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요. 개성이 다른 만큼 사람들에게 획일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성향이나 취향이 저마다 있습니다. 이들이 지나온 성장 환경을 생각할 때 이들의 구화와 수화 병행식 표현이 눈에 거슬려 할 필요가 없습니다. 획일성이 다양한 문화와 사회를 지향하는 현 시대의 풍조에 역행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저의 문제인데요. 제가 성남농아교회에서 행한 칼빈 예정론 강의에서 구화가 많이 구사되지 않은 것은 다행히(?) 성남농아교회 교인들이 청인이 없고 거의 전부가 농인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청인 교인들을 위해 제가 말을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인들이 끼여 있을 경우 이들을 의식해서 저는 말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보니 문장식 수화표현이 되어버립니다. 농인들 입장에서 만족스러운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저는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불만을 제기한 농인이 없는 것은 제가 농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확하게 수화로 표현하는데 성공한 덕분이 아닐까 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제가 설교할 때 말과 수화를 동시에 구사하는 습관이 있는 것은 제가 영락농아인교회 전도사로 시무할 때 담임 목사이신 문영진 목사님의 지시 탓입니다. 당시 청인 교인들이 제법 많이 예배에 참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순수 한국수어에 익숙치 않은 이들을 위해(문 목사 자신도 포함해서. 그 당시 문 목사의 수어 구사 능력은 ‘유창’과 좀 거리가 있었고 농식 관용수화 표현에 아직 익숙치 못한 상태였음) 말과 수어로 동시에 설교하라고 저에게 주문하셨고 담임 목사의 지시를 햇병아리 전도사인 제가 감히 거역할 수 없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말과 수화를 동시에 해야 했습니다. 결국 제가 수화로 설교할 때 청인 교인들을 위해 말로 동시 통역한 셈입니다. 처음에 시도해보니 서툴러서 참 힘들었습니다. 실수를 많이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차차 도가 트이면서 이제는 아주 익숙해졌습니다. 제 솔직한 느낌을 말씀드리자면 역시 순 수어로 설교하는 것이 더욱 마음 편합니다. 제가 2살 때 청력을 잃은 순 농인인데 수어보다 말에 더 익숙할 리가 있겠습니까. 웃음.
CGNTV 방송에 나온 저의 설교가 언제 어디서 행한 것인지 모르지만 아마 청인들이 함께 참석한 예배시간에 행한 설교로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이미 설명 드린 대로 청인들이 저의 수화 설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뜻에서 말을 동시에 하는 것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박창후> 한국사회에서 구화와 수화 둘 다 동시적으로 사용하면 교양이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끔 하거나 이를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어느 정도 팽배해 있습니다. 일부 한국 농인과 일본 농인들은 가급적이면 구화와 수화 둘 다 동시적으로 쓰기 때문에 흐름이 가끔 어색해보이기도 하거니와 자연스런 농식수화라는 언어체계 내지 코드를 교란시킨 결정적 원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미국 농인은 한국 농인, 일본 농인과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구화와 수화 둘 다 쓰면 좋다는 평행처리가 미국 농사회의 굳혀진 대세로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극소수에 머물 뿐이라면 왜 한국사회에서 구화와 수화 둘 다 써야 한다는 평행처리가 유독 힘을 얻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농식수화라는 언어체계와 우리말이라는 언어체계가 이처럼 상반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둘 다 병행처리할 수 있다는 건 결국 프로세스(?)가 둘 다 같다는, 극히 말도 안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셈입니다. 각기 다른 프로세스(?)가 한 시스템을 통과할 수 있다는 부자연스런 모양새입니다. 이처럼 부자연스런 모양새가 한국사회에서 교양이 있거나 바람직한 농인의 상을 정립하게 하는 일종의 모델을 엉뚱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말 못하는 대다수 농인들은 평생 열등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반면, 극소수의 농인들만 구화와 수화 둘 다 동시적으로 쓰면서 얻게 된 비뚤어진 우월감으로 인생을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농학교 현장에서 수화와 구화 둘 다 가르치려는 교육방식이 정통으로 굳혀져 나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집에 가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수화와 구화 둘 다 또박또박 정확히 가르치는데, 그건 수화의 자연미를 병들게 만드는 인공적인 병균입니다. 지금처럼 대다수 농인의 심리를 위축시키게 만들고, 극소수 농인을 기살리게 만드는 언어방식(병행처리) 즉 구사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강주해 목사님> 구화와 수화를 동시에 하는 것을 가리켜 미국에서는 simultaneous communication(약어:심컴)이라 합니다. 보통 농인들이 구사하는 진정한 의미의 한국수어에서 다소 일탈한 표현인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어 문장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표현하는 경향이 있어서 문장력이 우수하지 못한 보통 농인들이 쉽게 구사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칠맛 나는 농인 특유의 정서나 애환이 녹아있는 관용 수화표현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제약을 느끼게 한다는 점도 심컴의 치명적 단점으로 꼽을 수 있지요.
그럼에도 저를 비롯하여 일부 유식층 농인들이 심컴에 가까운 수화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첫째, 수어 어휘가 한국어 어휘에 비해서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요 둘째는 청인들의 입장에서는 심컴에 가까운 표현이 더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학술적인 내용이 들어있는 학술 발표나 공식 모임이나 행사에서 발표되는 격조 높은 연설이나 강연이나 축사 등등은 역시 심컴으로 하는 것이 통역사 입장에서 쉬울 것 같습니다. 제 경험상 순 한국수어로 학술 논문이나 강연이나 연설 등을 충실하게 표현하는데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농인끼리 모여 있을 때에는 한국수어로 표현하는데 불편을 느끼지 않습니다. 적어도 저의 체험을 비추어 볼 때는.
미국에서는 왜 농인들이 순 수어를 구사하지 않고 형편에 따라 심컴 비슷한 표현을 구사하느냐 하는 연구 논문이 발표되었는데 그 논문에 의하면 농사회 혹은 농문화에 대한 보호 본능에서 비롯된 자기 방어 혹은 자위(自衛) 행위라는 설명이 있었습니다. 좀 더 부연 설명한다면, 청인들한테 농문화나 농사회가 무방비적으로 노출되고 침범 당하지 않으려는 목적으로 영어 문장에 충실한 수화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청인들이 농인들끼리 구사하는 순 수어에 능통하게 됨으로 그들이 농사회나 농문화에 쉽게 진입하게 함으로 나중에 농인들이 농문화나 농사회에서조차 주도적인 지위를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일부러 청인들에게 농인 특유의 수어표현을 보여주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방어기제 탓인지 제가 청인들이 있을 때는 문장식 수화표현을 구사하고 농인들이 있을 때에는 순수 수어 표현을 구사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습니다. 강연이나 연설이나 학술 강의 같은 경우 순 한국수어로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이해한다면 일부 농인들이 구사하는 문장식 수화표현 형태에 대해서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제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구화와 수화를 동시에 구사하는 이들은 아마 초등부 과정이나 중등부 과정을 구화학교에서 마친 사람이거나 일반 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은 사람이라 구화에 익숙한 탓에 뒤늦게 수어를 배웠다 할지라도 구화학교나 일반학교에서 형성된 구화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한 데서 오는 결과물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런 경우 그들의 성장 배경을 고려할 때 무턱대고 비난만 할 게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농인들이 이러한 짬뽕식 표현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표현을 고수하는 이들은 농사회에서 자칫 왕따를 당할 수가 있습니다. 농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경우 가능한 문장식 표현을 배제한 순 수어를 구사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야 농인들은 자기 문화와 사회에 이들을 수용해줄 수 있을테니까요. 심컴 표현에 유창한 저라도 아직도 구화와 수화를 병행하면서 문장식으로 구사하는 딱딱한 수화표현을 하는 농인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저의 솔직한 고백입니다. 농인끼리는 순 한국수어로 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럽고 편안합니다. 만의 하나 이런 이들이 우월감 때문에 혹은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구화와 수화를 동시에 하는 다소 무미건조한 표현을 고수하고 있다면 이들은 솔직히 농사회에서 환영받을 가치가 없는 위인들임에 틀림이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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